경유 제재 완화에도 돈바스 전역 통제 요구 고수
CNN “美 경제적 유인, 러시아엔 전략 성공 신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러시아산 경유 제재를 완화하며 종전 협상의 돌파구를 찾고 있지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돈바스 전역을 통제하겠다는 요구를 굽히지 않고 있다. 경제적 이익을 주면 타협을 끌어낼 수 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기대와 달리, 러시아는 미국의 유화 조치를 자국 전략의 성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CNN은 21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경제적 거래로 풀 수 있는 문제로 바라보지만, 푸틴 대통령은 미국의 유화 조치를 자국 전략이 성과를 내고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짚었다.
이런 인식 차이는 이날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푸틴 대통령과 스티브 위트코프 미국 대통령 특사의 회담에서도 드러났다. 약 3시간 동안 종전 구상과 경제협력 방안이 논의됐지만, 러시아의 핵심 요구가 바뀌었다는 징후는 나타나지 않았다.
위트코프 특사는 전날 노르웨이에서 미국·유럽·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관계자들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논의한 종전 구상을 전달했다. 여기에는 러시아를 협상으로 유도하기 위한 경제적 유인책도 포함됐다.
그러나 크렘린궁 고위 관계자는 전달받은 구상에 우크라이나 위기를 해결할 실질적 가치가 있는 내용은 거의 없다는 취지로 평가했다. CNN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전역에 대한 통제와 우크라이나의 향후 안보 체제에 관여할 권한 등 기존 요구를 고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유 제재 완화했지만…푸틴은 비료·에너지 거래까지
트럼프 대통령의 접근은 전쟁을 끝내면 미국과 러시아 모두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계산에 바탕을 두고 있다. 대러 제재를 걷어내고 무역과 투자를 확대하면 러시아도 타협할 이유가 생긴다는 구상이다.
최근 러시아산 경유 수출에 대한 제재를 완화한 조치도 이런 흐름과 맞닿아 있다. 다음 달 중간선거를 앞두고 미국 내 연료 가격을 낮추려는 목적이 있지만, 러시아에도 수출과 수익을 늘릴 기회를 열어줬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정유시설 공격을 멈추게 하는 에너지 휴전도 추진했다. 하지만 휴전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고, 이 과정에서 미국과 우크라이나의 정보 공유에도 차질이 생겼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지도부 교체까지 거론했다.
CNN은 러시아가 이런 조치들을 종전 조건을 양보해야 할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오히려 미국을 상대로 한 자국 전략이 통하고 있다는 신호로 여긴다는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이번 회담에서도 경유 거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미국에 대한 비료 수출 확대 가능성을 제시했다. 종전 조건을 완화하기보다 추가 경제협력 의제를 내민 셈이다.
회담에 참석한 키릴 드미트리예프 러시아 직접투자펀드(RDIF) 대표도 회담 후 데이터센터와 에너지 분야의 다양한 협력 사업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CNN은 러시아가 대규모 경제협력 가능성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관심을 끌면서도 전쟁 목표에서는 물러서지 않고 있다고 짚었다.
미국인 석방은 성과…영토 요구 양보는 별개
러시아가 회담에 앞서 미국인 스티븐 허버드(74)를 석방한 일도 양국의 서로 다른 계산을 보여주는 사례로 거론됐다. 허버드는 2022년 러시아의 전면 침공 초기 우크라이나에서 붙잡혀 4년 넘게 억류돼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가 자신에 대한 존중으로 별도의 대가나 맞교환 없이 허버드를 풀어줬다고 강조했다. 미국인 귀환을 자신의 협상 성과로 내세운 것이다.
그러나 미국인 석방이 러시아의 종전 조건 변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CNN은 러시아가 경제협력 제안과 제한적인 유화 조치로 미국의 환심을 사면서도 핵심 영토·안보 요구는 고수하는 데 주목했다.
협상 가능성 자체가 닫힌 것은 아니다. 러시아는 미국·우크라이나와의 3자 협상을 재개할 의향을 밝혔고, 트럼프 대통령도 종전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관건은 협상장에 다시 앉는 것을 넘어 러시아가 실제로 요구를 조정하느냐다. CNN의 분석은 경제적 보상이 종전 타협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기대와, 그 보상 자체를 전략적 성과로 보는 푸틴 대통령의 계산 사이에 간극이 있다는 데 초점을 맞췄다.
윤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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