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정유시설을 겨냥한 공격을 사실상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1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에너지 휴전’을 주장한 지 보름여 만이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9일 작전 내용에 정통한 관계자들을 인용해 “우크라이나군이 10월 중순 장거리 공격을 수행하는 부대에 러시아 정유시설 공격 작전을 사실상 보류하라는 지침을 내렸다”며 “이미 진행 중이던 작전은 마무리하되, 이후 정유시설을 겨냥한 공격은 당분간 중단하도록 했다”고 전했다.
러시아 정유시설 공격 중단은 우크라이나 정부의 공식 조치는 아니다. 다만 WSJ은 “비공식적인 이번 공격 중단은 미국과 우크라이나의 관계가 악화한 상황이 이어지던 지난주 초 시작됐다”며 “해당 조치는 미국 중간선거가 끝날 때까지 또는 11월 중순 이후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장거리 공격 작전에 관여하는 우크라이나군 관계자 2명은 WSJ에 “예브게니 흐마라 우크라이나 국방장관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외교적으로 민감한 상황인 만큼 러시아 정유시설 공격을 잠시 자제하는 편이 낫겠다는 군의 판단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젤렌스키 대통령은 흐마라 장관의 뜻을 수용하면서도 정유시설 공격 금지 명령을 내리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 27일 기자들에게 “우리 군에게 최근 며칠 동안 조금 더 신중하게 작전을 수행하라고 전했다. 다만 정유시설을 공격하지 말라는 명령은 없었다”며 “우크라이나 드론 부대가 현재 러시아 내 다른 유형의 목표물을 공격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WSJ은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과 미국의 군사적 지원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 속에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정유시설을 겨냥한 공격을 사실상 중단했다”고 평가했다.
정유시설 공습 중단, 스타링크와 연관 있나일각에서는 우크라이나의 이번 조치 배경에 드론 작전 운용 등에 필수적인 스타링크 사용 제한이 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WSJ은 “미 당국 측은 러시아 정유시설 공격 중단과 우크라이나 스타링크 사용 제한 해제가 서로 연계된 조치는 아니다”라면서도 “우크라이나와 유럽 당국자들은 (러시아 정유시설 공격과 관련해) 우크라이나가 미국의 압박을 강하게 받고 있었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스타링크뿐만 아니라 패트리엇 방공 미사일과 미사일 조기경보 정보 등 우크라이나가 전쟁 수행 과정에서 미국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안 되는 여러 요소들이 이번 조치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있다.
WSJ은 “이러한 의존성이 우크라이나를 미국의 압박에 취약하게 만들었다”며 “특히 스타링크 서비스 제한은 우크라이나군의 작전 수행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했다.
스타링크의 군사용 위성통신 시스템 스타실드는 한동안 속도가 제한돼 있다가 지난 24일 복구됐다. 이와 관련해 한 우크라이나군 관계자는 “스타링크와 정유시설 공격은 하나의 이야기를 구성하는 두 부분이 됐다”고 말했다.
앞서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 19일 미국 상·하원 의원들과 진행한 화상회의에서 “우리는 30일간 러시아 정유시설 공격을 중단할 수 있다. 대신 미국이 이 기간 패트리엇 요격미사일로 우리 영공을 지켜주길 기대한다”고 말한 바 있다. 당시 미국은 해당 제안과 관련한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트럼프에 배신감 느껴”한편 젤렌스키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산 원유의 미국 공급을 허용하는 ‘경유 딜’ 등으로 갈등을 빚어왔다. 지난 9일 ‘경유 딜’ 소식을 접한 뒤 영국 언론으로부터 트럼프 대통령에게 배신감을 느꼈냐는 질문에 “솔직히 그렇다”면서 “우리가 강력한 파트너를 잃는다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지난 14일에도 젤렌스키 대통령은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트럼프는 ‘그런’ 사람들을 좋아하고 존경한다”며 “그에게는 20년, 30년, 40년씩 장기 집권하며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매우 강력한 존재로 비치는 것 같다”고 꼬집기도 했다.
이후 우크라이나는 보란 듯이 러시아 정유시설을 향한 공습을 이어갔지만 우크라이나 현지 언론에서도 최근 며칠 동안 정유시설 공습에 대한 보도는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대신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군용 방탄복 생산과 연관된 화학물질 공장을 공격하는 등 공격 대상을 변경하고 있다.
한편 러시아는 29일 우크라이나 중부 도시 드니프로의 한 기차역을 제트 드론으로 공습했다. 이날 공습으로 최소 14명이 사망하고 10여 명이 부상했으며 부상자 중에는 11세 소년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의 공습 직후 SNS에 “일반 통근열차와 여객열차가 정차해 있던 승강장을 드론으로 직접 노린 끔찍하고 잔인한 공격”이라며 러시아의 민간 기반 시설 타격을 강하게 비난했다.
우크라이나 철도공사는 “러시아 드론이 추락하기 전 공습 경보 발령을 통해 위험 수위가 높아졌음을 안내했지만 승강장에 남아 있던 일부 승객들이 미처 피하지 못한 상태에서 드론이 추락해 폭발했다”며 애도를 표했다.
송현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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